Seminary · Since 1955 · Yangrim
Yangrim · 楊林
전 세계에서 유일한 선교사 묘역. 1895년 한 알의 신앙이 묻힌 자리.
한 알의 씨앗이묻힌 자리,70년이 자라난 자리.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받았기에
자랐고,
자랐기에 보냅니다.
1895년 양림이 받았습니다. 1955년 호남신학대가 그 신앙을 이어 시작했습니다.
2025년, 70년이 자란 자리에서 이제 우리도 보내는 자가 됩니다.
지금, 함께 짓는 자리 ㅡ
70주년 한 구좌.
한 구좌 70만원. 1구좌, 5구좌, 20구좌 ㅡ 마음 닿는 만큼 약정하시면 광주은행 70주년 기념기금 계좌로 송금해 주세요. 송금 후 발전기금실로 성함·연락처·이메일을 알려주시면 영수증을 발급해 드립니다.
70주년 기념기금 계좌
한 마음이 모여,
94분의 자리.
한 구좌 70만원. 마음 닿는 만큼 약정하시고 송금이 확인된 분들을 가나다순으로 새깁니다. 같은 분이 N번 입금하면 카드 안에 N건 모두 표시되며, 명단 카드를 누르면 본인 명의로 기부금 영수증을 바로 발급받으실 수 있습니다.
명단에서 본인 정보 수정·삭제를 원하시면 발전기금실 062-650-1506 으로 문의해 주세요.
70주년 전체 명단 보기→양림에
잠든 이들.
전 세계에서 유일한 선교사 묘역. 세 시대에 걸쳐 양림에 잠든 분들이 있습니다. 초기 헌신의 시대, 채 피어나지도 못한 어린 자녀들의 시대, 그리고 「죽으면 광주에 묻히고 싶다」 며 다시 돌아온 영원한 광주인의 시대. 호남신학대학교는 이 자리 위에 서 있습니다.
양림의 기억 전문→초기 헌신의 시대
목숨을 다해 양림에 처음 잠든 첫 선교사들.
양림에 가장 먼저 잠든 첫 선교사. 전남 각지를 돌며 순회 진료하다 장흥에서 급성 폐렴에 걸려 광주로 이송 끝에 소천. 그를 기려 「오웬기념각」 이 세워졌다.
목포·광주 선교부를 개척.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고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의 토대를 놓았다. 호남 장로교의 시작이며, 호남신학대학교의 신학적 뿌리.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 설립, 대한간호협회 초대 회장. 무명옷에 고무신, 고아와 한센병 환자 곁에서 평생. 마지막 남긴 것은 동전 7전과 강냉이 가루. 광주 최초의 시민장.
채 피어나지도
못한 자리.
양림 선지동산 묘역 — 비석은 스물넷, 영혼은 스물여섯. 그 차이를 만든 두 영혼은 1913년 4월 단 하루 사이로 잠든 코잇(R. T. Coit) 선교사 부부의 두 자녀가 책 모양 한 비석 아래 함께 합장된 자리.
4월 26일 누이 Roberta Cecil(만 1세), 다음 날 4월 27일 오빠 Thomas Hall Woods(만 3세). 머나먼 타국에서 단 하루 사이로 두 자녀를 잃고서도 조선을 향한 구호와 교육의 손을 놓지 않았던 그 부모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두 자녀 · 1913년 4월
영원한 광주인의 시대
1980년 5월 광주의 같은 자리에 섰고, 죽어 다시 양림으로 돌아온 광주기독병원의 세 손.
본명 로널드 디트릭(1927.2.18—2015.1.30). 데이비슨 대학 + 펜실베이니아 의대 졸업. 1958년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입국, 1961년 광주기독병원 외과 과장, 1967년 제7대 원장. 수피아간호학교(현 기독간호대학) 설립 중추. 소아마비 백신을 들여와 광주 어린이들에게 직접 주사. 1980년 5월 광주기독병원장으로 총상 환자를 밤낮 가리지 않고 수술. 묘비에는 미가 6:8과 「헌신적인 봉사의 일생 · A Life of Dedicated Service」가 새겨져 있다.
미시간주 홀랜드 출생, 미시간대 치대 졸업. 외국인 최초 한국 치과의사 면허. 1963—1986 광주기독병원 치과 과장으로 23년 사역. 호남 최초 조선대 치과대학·광주보건전문대 치위생과 개설. 미국 귀국 후 이동식 치과 차량으로 북한 의료봉사. 평생의 동역자 부인 유애진(Ruth Joan Nieusma)이 자신의 86세 생일이었던 2016년 4월 23일에 먼저, 유수만은 2018년 7월 7일에 그 뒤를 따라 ─ 양림에 한 비석 아래 합장. 묘비에는 「미국 남장로회 파송 · 광주기독병원 치과의료선교사 1961~1986」이 새겨져 있다.
목사 허철선 박사(1936.7.9—2017.6.26). 미국 장로교 선교사 1965~1985. 광주기독병원 원목. 1980년 5월 시민·학생들을 사택 지하실에 숨겨주고, 광주의 참혹한 현실을 직접 사진으로 기록. 필름을 신발 밑창·과자 상자에 숨겨 외신에 반출, 군부의 언론 통제를 뚫고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알렸다. 2017년 미국 소천 후 「광주에 묻히고 싶다」 유언에 따라 2018년 양림 안장. 묘비에는 시편 116:15가 새겨져 있다. 부인 허마르다(Martha Huntley) 사모는 오늘도 미국에서 호남을 위해 중보 중.
죽으면 광주 양림동에 묻히고 싶다.
일곱 갈래의
자리.
발전기금은 한 가지 자리가 아닙니다. 한국 교회·동문·후원자의 마음이 흐를 수 있는 일곱 갈래를 준비했습니다. 현재 활성 캠페인은 70주년 한 구좌, 상시 후원은 네 갈래로 열려 있으며, 양림 정신 계승과 오병이어 선교사는 출범 준비 중입니다.
70주년 기념기금
1955년 한 알의 신앙으로 시작한 모교가 70년을 맞이합니다. 한 구좌 70만원, 마음 닿는 만큼.
교육활동 발전기금
신학생의 교육·실습·사역 활동을 지원합니다. 매월 정기 후원과 일시 후원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학생장학 기부금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서도 부르심에 응답한 신학생에게 학업을 이어가게 합니다. 호명·일반 장학 모두 운영.
연구·석좌 기부금
한국 교회와 호남 신학을 깊이 연구하는 석좌·연구비 기금입니다. 다음 세대의 신학을 위한 토대.
시설·건축 기금
70년을 함께한 캠퍼스를 미래 세대에게 물려줍니다. 강의실·기숙사·예배당의 개·보수.
양림 선교사 정신 계승기금
양림 선지동산 묘역 스물네 비석 · 스물여섯 영혼의 정신을 기억하고, 그 사역을 21세기 한국 교회로 이어가는 기금. 출범 준비 중.
오병이어 선교사
매월 정기 후원으로 한 사역자의 광야 곁에 함께 서는 약속. 준비되는 대로 차례로 출범 예정.
일곱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새 갈래는 준비되는 대로 차례로 엽니다.
“양림 선지동산 묘역에는 스물네 비석이 있지만
그 아래 잠든 영혼은 스물여섯 분입니다.
그 숫자 사이의 간극에, 우리가 진 빚이 있습니다.
개교 70주년 ─ 그 빚을 갚는 자리에 함께 서 주십시오.”
한 구좌의 마음이 모여
미래 70년의 신학교육을
짓습니다.
송금 후 발전기금실로 성함·연락처·이메일을 알려주시면 영수증을 발급해 드립니다. 연말정산 영수증은 본 사이트에서 직접 출력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