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신학대학교 발전기금
SINCE 1955 · FUND.HTUS.US
← 메인으로President · A Letter

양림에서 받은 한 알,70년 신학교육이 되었습니다.

호남신학대학교 총장 황민효 ─ 70주년의 자리에서 동문과 후원자, 한국 교회 앞에 드리는 인사말.

Founded
1955
호남성경학원
Anniversary
70
주년 · 2025
Next
2026
처음 보내는 자리
The Letter · 인사말 전문

“양림 선지동산 묘역에는
스물네 비석이 있지만
그 아래 잠든 영혼은 스물여섯 분입니다.
그 숫자 사이의 간극에, 우리가 진 빚이 있습니다.

“그래서 양림의 그 한 비석은 펼친 성경처럼 두 페이지로 누워 있습니다 ─
왼쪽 페이지에 누이의 이름, 오른쪽 페이지에 오빠의 이름.”
1913년 4월 · 코잇(R. T. Coit) 선교사 부부의 두 자녀

1913년 4월 26일, 미국 남장로교 코잇 선교사 부부는 만 1세의 딸 Roberta Cecil을 잃었습니다. 다음 날 4월 27일, 만 3세의 오빠 Thomas Hall Woods를 다시 잃었습니다. 슬퍼할 겨를도, 비석을 하나 더 세울 여력도 없어 한 무덤에 두 자녀를 함께 묻었습니다. 부부는 그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고, 다음 날 다시 일어나 조선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묵묵히 들길을 걸어 갔습니다. 스물네 비석, 그 아래 스물여섯 영혼 ─ 그 차이를 만든 한 비석이 거기에 있습니다.

오웬은 장흥에서 환자를 진료하다 폐렴에 걸려 길 위에서 「저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환자들을 위한 기도를 청합니다」를 남기고 양림에 가장 먼저 묻혔습니다. 서서평은 평생 무명옷에 고무신을 신은 채 마지막 동전 7전과 강냉이 가루 두 홉만 남기고 광주의 시민장으로 잠들었습니다. 유진벨은 두 번의 사별을 짊어진 채로도 호남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이 무릎을 꿇은 자리, 다시 일어나 들길을 걸어 간 자리 위에 ─ 호남의 교회와 신학이 자랐습니다.

“Lux Lucet in Tenebris ─ 빛이 어둠 속에 비치다.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이 땅이 어둠에 잠겼을 때 복음을 들고 찾아와 한국인들의 벗이 되었고, 밀알이 되어 여기에 묻혔습니다.”
양림 선지동산 묘역 안내판 · 요한복음 1:5

양림은 100년 전 과거에 멈춰 있는 화석이 아닙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핏빛 자리에서도 같은 손들이 같은 곳에 섰습니다. 광주기독병원장 이철원(Ronald B. Dietrick) 선교사는 총상 환자들을 밤낮 가리지 않고 수술했고, 치과 과장 유수만(Dick H. Nieusma) 선교사는 진료실을 지켰으며, 원목 허철선(Charles Betts Huntley) 선교사는 사택 지하실에 시민과 학생들을 숨겨 주고 필름을 신발 밑창과 과자 상자에 숨겨 광주의 진실을 외신에 전했습니다. 세 분 모두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 편안한 고국 땅을 마다하고 죽어서까지 다시 양림의 흙으로 돌아왔습니다.

유수만 선교사의 부인 유애진(Ruth Joan Nieusma) 사모는 자신의 86세 생일 그 날 별세하셨습니다. 그리고 허철선 선교사의 부인 허마르다(Martha Huntley) 사모는 오늘도 미국에서 살아 계십니다. 남편을 양림의 비석 사이에 먼저 묻어두고, 머나먼 타국에서 호남 땅을 위해 눈물로 중보하고 계십니다. 양림은 그래서 ─ 여전히 살아 있는 자리입니다.

1955년 호남신학대학교는 그 신앙의 한 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70년이 흘렀습니다. 스물네 비석 옆에서 강의가 시작되고, 비석 옆에서 기도가 끝납니다. 한국 교회·동문·후원자께서 끊어지지 않는 줄로 이어주신 덕에, 1,293분의 마음으로 누적 약 151억 원이 모였고 우리 신학생들이 자라 한국 교회와 세계 곳곳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70년 신학교육 ─ 이것이 양림에서 받은 한 알의 결실입니다.

그러나 2026년, 호남신학대학교는 그분들의 묘비 앞에 서서 깊이 자문합니다. 받기만 하던 130년이 지나, 이제 우리도 누군가를 보낼 차례 아닌가.

오늘의 사역지는 1895년의 양림보다 외롭습니다. 신학생들은 밥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곁에 함께 무릎 꿇어 줄 사람이 모자랍니다. 미자립 교회·해외 선교지·도시 외곽의 새벽 등잔불 앞에 홀로 선 한 명의 사역자에게 필요한 것은, 머나먼 타국에서도 멈추지 않는 허마르다 사모의 그 중보처럼, 끊어지지 않는 중보의 줄입니다.

개교 70주년 기념기금은 「한 구좌 70만원」의 약속으로 미래 70년을 짓는 자리입니다. 한 구좌·다섯 구좌·스무 구좌 ─ 마음 닿는 만큼 동참해 주십시오. 지갑을 여는 것을 넘어, 당신이 가장 잘하는 일과 가장 뜨거운 시간으로도 함께해 주신다면, 양림의 스물네 비석 곁에 새로운 한 알이 더해지고, 호남신학대학교의 다음 70년이 그 위에 자랄 것입니다.

“1895년 양림이 받은 한 알, 70년의 신학교육으로 자랐습니다.
개교 70주년, 우리 곁에 설 다음 70년은 ─ 당신입니다.”

호남신학대학교 총장
황 민 효
Four Streams · 사역의 전 생애 동행

장학금이 아닙니다.
동행의 줄입니다.

우리는 「장학금」 을 모으지 않습니다. 한 명의 사역자가 광야에서 무너지지 않게 하는 동행의 줄을 잇습니다. 네 갈래의 자리가 사역의 전 생애를 따라 흐릅니다.

Theology

부르심의 자리에 답하는 신학

신학교육 · 우수 교원 · 해외 교류 · 심도 있는 연구

광야의 사역자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먼저 신학교 안에서 빚어내는 영성이 단단해야 합니다. 우수 교원, 해외 신학교 교류, 깊이 있는 연구로 사역에 견디는 영성을 학교 안에서 빚어냅니다.

Companionship

광야에 선 동문에게 끊어지지 않는 줄

미자립 교회 · 해외 선교지 · 도시 외곽 사역

졸업하고 새벽 등잔불 앞에 홀로 선 동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곁에 함께 무릎 꿇어 줄 사람입니다. 사역지 동행 기금은 미자립 교회·해외 선교지·도시 외곽 사역자의 가정과 생활에 흐릅니다.

Intercession

안드레 중보기도실

매주 수요채플 · 사역지·신학생 호명 중보

오병이어를 가져온 한 어린아이를 본 이는 안드레였습니다. 우리는 매주 수요채플에서 사역지의 동문 한 명, 신학생 한 명, 중보 요청한 한 가정 한 가정을 호명하며 중보합니다.

The Next One

다음 한 명 · 70주년 이후의 사역자

70주년 이후의 미래기금

70주년을 자랑하는 자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다음 100년에 보낼 한 명의 사역자를 오늘부터 준비하는 미래기금으로 적립합니다.

Honam Love Campaign · 호신사랑캠페인

지속 가능한
후원 문화의 열 가지 약속.

호남신학대학교는 「호신사랑캠페인」 이라는 이름으로 동문·교회·후원자 네트워크 안에서 지속 가능한 후원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매년 다듬어 가는 열 가지 전략입니다.

No. 01

모교 후원 의식의 회복과 확장

No. 02

동문 추천을 통한 신규 후원자 발굴

No. 03

약정 · 자동이체 등 절차의 체계화

No. 04

개인 단위 정기 참여 채널 다각화

No. 05

연 1회 후원자 예우의 날 운영

No. 06

후원자 데이터의 영구 관리 체계 구축

No. 07

대규모 모금 캠페인 정례화

No. 08

재학생 · 졸업생의 모교 사랑 참여 확대

No. 09

후원자 피드백 시스템 운영

No. 10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등 지역사회 협력

70th Anniversary Fund · 진행 중

미래 70년을
함께 짓는 자리.

2025년은 호남신학대학교 개교 70주년의 해입니다. 한 구좌 70만원 의 약속으로 모교는 70주년 기념 행사와 함께 미래 70년을 여는 기념기금을 별도로 적립하고 있습니다.